작품의 영어 제목은 [말이 탄산음료처럼 보글거린다](Words Bubble Up Like Soda Pop)다. 일본 작품이고, 감독은 이시구로 쿄헤이다. 한국어로는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라고 되어있다. 일본어 제목의 직역인 것 같다.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일단 색감이 소다수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10대 취향 그림체를 가지고 애니를 만들어놓은 모습이다. 둘째로, 음악이 소다수 같다. 달콤하면서 상큼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내러티브는 어떤까? 작품이 시작되고 상당 시간 동안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이 제시되고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일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장난기 어린 모습의 한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실은 마트 관리자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이야기는 이 친구가 주인공 두 명을 이어놓을 때 시작된다. 어떻게 이어놓는가?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주인공 둘 모두와 부딛치며 이어놓는다. 우연히 부딛치기 전까지 이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저 군중 속에서 서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딛친 후 인연이 만들어진다. 루크레티우스식으로 말하면, 원자들의 배열 속에서 클리나멘이 발생하는 순간과 같다. 인연은 우연에 기반한다. 우연이 인연이 되는 것은 군중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게 작품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애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풋풋한 10대 감수성이긴 하지만 말이다.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자. 이 작품은 인스타그램풍이지만 사실 아주 고전적인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 중 하나인 체리는 무려 문학소년이다. 하이쿠를 쓰는 것 이외에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할 정도로 고전적인 문학소년이다. 윤동주가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생각해보라. 시인의 이미지 중 하나는 세계로부터 움추려드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렇다고 체리가 대단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게 이 친구의 한계이자 매력이다. 너무도 평범하다. 그러나 동시에 특별하다. 인스타 및 유튜브 스트리밍 세계 속에서 시를 쓰는 10대 혹은 20대는 주목을 받을 수 없다. 그의 시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어머니 뿐이다. 그러나 아무도 시를 쓰지 않는 시대에 10-20대 시인은 특별하기도 하다.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감독의 방식 또한 문학성을 유지하고 있다. 소다수 같은 그림체와 음악에 비하면 꽤 의외의 요소다. 중요한 두 개의 메타포가 등장한다. 하나는 체리가 끼고 다니는 헤드폰 및 또 다른 주인공 스마일이 끼고 다니고 마스크다. 다른 하나는 야마자쿠라 레코드다. 헤드폰과 마스크의 용도는 동일하다. 체리는 헤드폰을 낌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떨어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스마일은 마스크를 낌으로써 자신의 뻐드렁니를 감출 수 있다고 믿는다. 헤드폰과 마스크 둘 모두 자아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물론 방향은 다르다. 체리의 경우 헤드폰은 자아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헤드폰을 끼게 될 때 체리의 자아는 체리 내면에 형성된다. 세상과 격리될 때 나타나는 것이 체리의 자아다. 반면 스마일의 자아는 자신이 창피하게 여기는 뻐드렁니를 마스크로 감춤으로써 당당해지며 세상 밖으로 나가며 형성된다. 즉, 체리의 자아가 비사회적 자아라면, 스마일의 자아는 사회적 자아다.
물론 체리에게 사회적 자아가 없는 건 아니다. 하이쿠가 체리의 사회적 자아다. 체리는 자신의 하이쿠를 인터넷에 개재한다. 그러나 그는 하이쿠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읽지는 못한다. 너무나도 부끄러워한다. 자신의 사회적 자아가 자신의 숨겨졌던 신체와 연결되는 순간 사회적 자아가 무너진다고 여긴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부끄러워한다. 이 지점에서 스마일이 등장한다. 스마일은 체리가 읊는 하이쿠를 듣고 좋다고 느낀다. 자신은 체리의 하이쿠가 좋다고 체리에게 말해준다. 체리가 묻는다. 어떤 점이 좋은데? 스마일이 답한다. 목소리가 귀여워. 체리의 하이쿠 자체가 아니라 체리의 신체가 좋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체리의 하이쿠는 신체를 얻게 된다. 스마일은 체리의 하이쿠 계정을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한다. 체리에게 '엄마' 이외에 팬이 생긴 것이다. 이게 힘이 되어서 체리는 스마일 앞에서 헤드폰을 벗기 시작한다. 스마일을 통해 체리의 자아가 실체를 얻는다. 연애 이야기라는 뜻이다.
스마일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는다. 스마일이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사회적 자아와 숨겨왔던 신체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야마자쿠라 레코드다. 체리에 대한 마음이 생기고 서로 가까워지면서 스마일은 후지야마씨를 알게 된다. 후지야마씨는 체리가 일하는 사회복지센터가 돌보는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노인이다. 후지야마씨는 야마자쿠라라고 씌어진 레코드판 커버를 늘 들고 다니며 한번만 더 자신이 잃어버린 레코드를 듣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스마일은 체리를 도와 후지야마씨의 읽어버린 야마자쿠라 레코드판을 찾아주고자 한다. 결국 레코드판을 찾아내게 된다. 그러나 레코드판을 틀기 직전 스마일은 실수로 50년된 레코드판을 깨버리게 된다. 이 일로 늘 마스크 뒤에 숨어 미소지어온 '스마일'은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다. 야마자쿠라 레코드는 후지야마씨의 죽은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드판이다. 그는 아내를 20대에 잃었다. 야마자쿠라 레코드는 후지야마씨의 마음과 같다. 바로 그 마음을 깨버린 것이 스마일이다. 스마일은 그 의미를 안다. 그래서 눈물 짓고 사죄의 마음을 품게 된다. 부서진 레코드판을 본드로 붙여보지만 다시 떨어져나오는 모습 앞에서 스마일은 서럽게 운다. 체리마저 이사를 가게 되어 그녀를 떠나가게 된다. 연애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성숙해가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스마일이 최종적으로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것은 부서져버려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야마자쿠라 레코드의 여분을 우연히 하나 더 발견하게 되면서다. 부서진 레코드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마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스마일은 이 레코드를 지역 축제에서 틀고 그 장면을 라이브로 스트리밍한다. 떠나가던 체리는 야마자쿠라 레코드의 소리를 스마일의 스트리밍을 통해 차 안에서 듣는다. 이게 힘이 되어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에서 뛰쳐나와 스마일을 만나러 축제장으로 간다. 사랑의 힘으로 독립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축제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토록 부끄러워하던 자신의 하이쿠를 육성으로 외치며 스마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여기서 문자는 육화된다. 그리고 그 육화된 시에 스마일은 화답하여 그녀 자신을 최종적으로 육화시킨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스스로 마스크를 벗은 것이다. 스마일의 뻐드렁니가 아름답다고 말해준 체리의 하이쿠가 육화된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마음에 가닿은 결과다. 언어와 신체가 서로 만나며 사랑이 이루어질 때 작품이 끝난다. 성숙해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의사소통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큰 대중적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아니다.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고전적 문학성을 오늘날 10-20대의 언어로 풀어놓고자 한 점이 인상적이다. 소다수풍 그림체, 음악,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등 많은 것들이 10대풍이다. 언뜻보면 어른들 입장에서 유치하다고 무시하기 좋은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꼭 그렇지 않다. 소다수풍 외관과 달리 의외로 메타포를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자극적인 작품이 싫은 사람이라면 한번 볼 만하다. 물론 10대 감수성이 물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진지한 어른'이라 여기는 사람이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요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귀여워'다. (낭만주의의 키워드 중 하나가 '숭고'였던 것에 비하면 기가찰 노릇이지 않은가? 물론 2010년대 이후 '귀여움'은 진지한 1류 문학이론가들 사이에서 미학적 범주로 새롭게 논의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시카고대학 영문과 교수 Sianne Ngai를 보라. 물론 후기자본주의의 상품 소비의 관점에서 어떻게 귀여움이 작동하는지를 분석한 경우라 '귀여움'에 대한 전격적인 미학적 승인을 바란다면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내 경우를 묻는다면 괜찮았다고 말하겠다. 마지막 고백 장면에서 체리의 언어가 '사랑해'가 아니라 '좋아해'인 것을 보라. 풋풋한 10대 혹은 20대들의 이야기다.*
* 10대 취향이긴 하지만 체리와 스마일이 10대라는 증거는 없다. 학교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배경이 7-8월이기 때문에 방학 중이었을 수는 있다. 20대라고 해도 별 차이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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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Bubble Up Like Soda Pop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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