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공연을 보며 어떤 면에서 지미 핸드릭스 이후 록 음악은 없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록 음악 고유의 무대 문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예컨대, 기타를 가지고 부리는 섹스 어필,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고 난동을 피우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의 원형이 거의 전부 핸드릭스에게서 왔다. 노이즈 가득한 기타 피드백 소리를 예술의 경지로 올린 것을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차이도 있다. 후대 록음악가들의 경우 리듬의 요소가 핸드릭스에 비해 약화되었다. 핸드릭스의 기타 소리는 신체의 리듬을 닮아 있어 그가 만들어내는 성적인 퍼포먼스와 기타 연주 사이에는 괴리가 없다. 그의 무대는 기타를 가지고 섹스를 하는 형국이다. 실제로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그 만족감이 구태여 섹스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에 비해, 1990년대 커트 코베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의 연주에는 리듬과 그루브함이 없다. 기타 솔로도 별볼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신경질적 공격성의 느낌을 낸다. 말하자면, 코베인의 곡과 연주는 섹스 상대가 없어서 달래지지 않은 결핍을 표출하는 느낌에 가깝다. 코베인의 곡은 감각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의 곡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반면 핸드릭스의 곡은 불만을 알지 못한다. 그의 음악은 결핍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만족에 기초한다.
아래 영상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관객들의 태도다. 사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전석을 좌석으로 만든 19세기풍 로열앨버트홀에서 록음악 공연을 앉아서 듣는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상궤에서 벗어난 일로 여겨진다. (이건 마치 예술의전당에서 록을 공연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물론 못할 것은 없다. 21세기에 록은 이미 또 하나의 클래식이 되지 않았던가? 이제는 고상하신 록음악이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박한 록음악을 품을 공연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래 영상 속 관중들은 두 가지 태도로 내보인다. 첫째는 섹스 어필을 하는 리듬 위주의 음악을, 그것도 검은 피부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내적으로는 이미 완전히 매료되었으나 그 황홀감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점잖게 마치 클래식 음악인 것처럼 감상하는 대다수의 백인 청중이다. 둘째는, 체면이고 뭐고 이미 다 내팽겨치고 그 자신의 성적 황홀감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아주 소수의 청중이다. 원시의 부족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비록 앉아서이기는 하지만, 팔과 다리와 머리를 정신없이 리듬에 맞춰 흔들어댄다. 옆에 누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개인의 자아는 들려오는 음악과 거리를 취하지 못한 채 완전히 집단적 영혼의 고양에 동참한다. 소라도 한 마리 있으면, 그리고 칼이라도 손에 쥐어져 있다면, 멱을 딸 기세다. 거의 무속적이다. 이들의 모습은 근대의 클래식 공연장이 어떻게 고대 디오니소스적 제의로부터 발전해왔는지 그 숨겨진 이면을 드러낸다.
참고로, 1871년 문을 연 로열앨버트홀은 당연히 클래식 음악을 공연하기 위한 곳이었다. 이름부터 '왕립'이지 않은가? 당대에 지금과 같은 의미의 팝음악이 없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록과 팝이 앨버트홀에 스며든 건 1950년대 이후다. 보다 정확히는 1963년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공연 이후에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후 밥딜런, 지미핸드릭스, 핑크플로이드 등이 공연하게 된다. 그러나 아래 영상의 말미에서 볼 수 있듯 록음악 공연은 얌전하게 끝나지 않는다. 핸드릭스가 기타를 부순 후 그 잔재를 관객들에게 던져주자 관객들은 흥분 상태에 빠지며 폭도가 될 기미를 보인다. 아니니 다를까 화면에 경찰이 등장한다. 이후 이러한 경향은 실제로 사회적 문제가 된다. 록 페스트벌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알타모어 스피드웨이 프리 페스티벌에서 롤링스톤즈가 공연하던 중에는 심지어 관객이 페스티벌의 안전요원으로 고용된 갱단에게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과 함께 평화로운 히피 문화로 상징되던 록음악의 시대는 끝나게 된다. 이뿐 아니다. 1969년 살인마 찰스 맨슨이 원래 록스타가 되고자 했던 인물이며 록음악씬의 인물들과 관계를 지닌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록음악은 더 이상 해방의 상징이 아니게 된다. 1970년에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일어나던 미국의 켄트 주립 대학 캠퍼스에서 주방위군이 평화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총으로 쏴죽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이상 평화시위는 불가능하게 된다. 1971년 록음악 공연 후 관객들이 시설을 파괴하자 로열앨버트홀 측이 록음악 공연을 금지하게 되는 건 이러한 맥락 속에서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때 내려진 금지는 공식적으로 해제되지 않았다. 물론 그후 시간이 지나 앨버트홀에서 록음악 공연은 자연스럽게 재개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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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Royal Albert Hall, in London, on Feb. 24,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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