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는 집시였다가 지난 3월 신곡 하나를 발표했다. 반갑다. 6년 만의 신곡인데 여전히 훌륭하다. 6년 만에 단 한 곡이 나왔을 뿐이라는 것은 몇 가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첫째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을 때 한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현실에 거리를 취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 더 중요한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근래의 상황은 두번째 경우에 조금 더 주목하도록 만든다. AI을 이용하여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음악이 출현하며 음악의 개념을 예술에서 잠깐 단맛 느끼고 버리는 껌 정도로 바꾸고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훌륭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의 관심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히피는 집시였다의 6년 전 EP는 유튜브에서 1-2천 정도의 하찮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훌륭한 음악이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훌륭함이 침묵한 자리에서 대신 가짜음악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다. 인공지능은 20세기 동안 등장했던 수 많은 훌륭한 음악을 학습한 결과다. 거꾸로 말하면, 가짜가 진짜를 빨아먹은 후 정작 진짜들이 사라지고 있는 격이다.
동일한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5화로 가보자. 황동만은 영화계에서 단 한 편의 상업적 영화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해 감독이라는 칭호조차 공식적으로 얻지 못하고 있는 신세다. 대학 선후배들은 영화계에서 다들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들 사이에서 황동만은 자격지심을 느끼다 수시로 깽판을 친다. 결국 다른 이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다 8인회에서 나가게 된다. 그 와중에 황동만의 가치를 유일하게 알아봐주는 것은 엄마로부터 버려진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가는 변은아다. 그러나 사실 8인회 회원들은 각자 은밀히 황동만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영화 제작에 소재 등으로 사용해왔던 터였다. 영화제작사에서 PD로 일하는 변은아는 8인회 소속 감독들이 영화에 사용할 아이디어를 황동만으로부터 얻기 위해서라도 그를 다시 받아들여야한다는 박영수 감독의 제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반대에요. 황동만 감독님 8인회 다시 들어가는 거. 저만 봤으면 좋겠어요." 박경세 감독이 묻는다: "왜 너도 아도치려고?" 변은아가 다시 대답한다: "네, 저도 아도쳐서 황동만 감독님 입에 다시 탈탈 털어 넣어주게.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빛나는 인간인지 알게." 인간의 근본적 무가치함을 빛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히피는 집시였다의 2020년작 EP의 제목은 '0'이었다. 이번 6년 만의 싱글의 제목은 '#000000'이다. 둘이 연속성 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6년 전 있었던 곳은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지점이었다. 6년이 지난 후 얻어진 것은 번호다. 그러나 그 번호는 6년 전 주어졌던 숫자로부터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자기 분화가 이루어진 모습이다. 제로는 수십, 수백, 수천의 제로로 자기 분화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심연으로 쪼개어져 들어가는 모습이다. 곡의 표지도 없다. 그저 검은색이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다. 없음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연계에는 언제나 최소의 수량으로 이루어진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물질계는 가치의 영역이 아니다. 물질에 대해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물질은 가치가 있지도 않지만 없지도 않다. 가치의 문제는 비물질계에서만 일어난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일은 자연의 상궤에서 벗어난 인간 정신에게만 일어난다. 인공지능이 보여주듯 지능은 자연계에 속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다. 반면 정신은 자연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광기 속에서 살아간다. 상궤에서 벗어난 것은 누가 기계적 설계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역설은 자신을 가치 없다고 여기지 않고서는 물질계로부터 벗어나 비물질적 창조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을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창조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술의 역설은 사회적으로 무가치하지 않고서는 창조적일 수 없지만 동일한 이유로 사회 내에 속한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창의성은 무가치와 없음의 문제다. 창의성은 검다.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가끔 검은색이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검은 공간을 둘러싸는 테두리와 같은 빛이 공간에 구획을 부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검은색은 빛을 통해 보이게 된다. 0은 1을 통해 드러난다. 황동만에게 변은아가 필요한 이유다. 그는 끝없이 자기분화하는 제로와 같다. 변은아는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활짝 열린 사람 같아요."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로 불안정하다. 제로는 숫자의 체계 내에 포착되어 안정화되어야 한다. 그게 형식이 뜻하는 바다. 자연수 체계(the natural number)에는 제로를 위한 자리 자체가 없다. 자연수라는 사회는 제로를 없는 자 취급을 한다. 제로에게 안정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실수 체계(the real number)다. 수학의 역사에서 질적 도약은 제로를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6화에서 자신의 집에 찾아와 밥을 같이 먹는 변은아에게 황동만의 형 황진만이 묻는다: "인생의 목적이 뭐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성공 그런 것 말고.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아. 어떤 인간이 되겠다. 그런 목적." 생각을 좀 하더니 변은아가 말한다: "힘 있는 엄마요. 어, 저는 힘 있는 엄마가 될 거예요. 돈 있고 빽 있어서 힘 있는 거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용한 중심에 서 있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하게 해주는 그런 엄마. 그런 여자가 될 거예요. 저희 할머니처럼." 은아의 말을 들은 후 황진만은 자리에서 일어선 후 자신의 시집을 가져와 친필로 서명을 한 후 변은아에게 건내준다. 은아의 말을 듣기 전까지 은아가 가져온 음식을 깨작거리며 먹던 황진만은 그 후 젓가락으로 크게 한입 집어 먹는다. 변은아는 황동만을 지탱해주는 "힘 있는" 형식이다. 물론 은아 또한 내면에 어려서 엄마로부터 버려진 상흔을 지닌 인물이다. 오직 그런 한에서 그녀는 "힘 있는 엄마"가 되기를 결심할 수 있다. 히피는 집시였다로 돌아가자면, 그들에게 어둠을 드러내는 빛은 음악이라는 형식이다. 검은 바탕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빛을 본다.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면, 무가치함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가치와 무가치의 문제는 인간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찾아오는 우여곡절과 같다. 삶이란 비물질적 무가치함 자체가 빛을 발하도록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끝에 가치 및 무가치의 문제와 작별하며, 다시 물질로 돌아가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천 개의 문"이 이미 다 닫힌 상태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 사람에게서 기대할 것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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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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