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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는 집시였다, <불>

by spiral 2026. 6. 20.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뎌진다. 그런데 그러다 감정이란 게 찾아오게 되면 두려움의 형태를 띤다. 그렇다고 살기 위해 오기를 부릴 힘 같은 것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의미한 우연성의 물결에 쓸려내려가는 것을 인지할 뿐이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기에 한숨을 쉬게 될 뿐이다. 혹은 욕을 짧게 던지고 말 뿐이다. 물론, 짧게 자주 던진다. 누구에게 던지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세상의 흐름 자체, 상황에게 던진다고 느낀다. 흐르는 사물들과 인물들이 상황을 만들 뿐이다. 상황은 사물들의 우연한 충돌이 잠시 만들어내는 조화와 같다. 유신론자는 그것을 섭리라고 부른다. 유물론자는 그 뒤에 흐르는 우연한 충돌의 연쇄를 볼 뿐이다. 원자론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세상 일이 우습게 보인다. 신이 있다면 그들에게 신은 주사위를 던지는 신이다. 세상이 고통스러운 것은 신이 모든 것을 그렇게 계획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그저 통계론적 우연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무심한 룰렛 기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실망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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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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