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을 타고 흐르는 빛," 이게 음악은 듣는 이유다. 돌덩어리와 같이 무거운 신체의 질량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항상 그렇게 느껴왔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한 예로, 난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어렵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그러한 사람은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질량이 늘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그 무거움이 자기 자신을 짓누르고, 결국 상대방마저 짓누르게 된다. 충돌과 폭력이 발생한다. 반면 자신의 무가치함을 아는 사람은 주먹질이 들어와도 신체와 같이 보였던 것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사라질 뿐이다. 그 어떤 마찰도 저항도 충돌도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문장에는 한 문장이 더 덧붙여져야한다: "무가치함을 아는 사람만이 혈관 속으로 빛이 흐르게 만들 수 있다." 그 빛을 음악이라 부른다. 존 홉킨스는, 근래, 내가 계속해서 되돌아가서 듣게 되는 음악가다. 그의 음악에는 자아라는 무게가 없다. 그저 이미지들이 빛을 타고 흐를 뿐이다. 그 어떤 율법도 없고, 그것을 따르는 인간도 없다. 흐름은 자아의 입장에서 볼때 해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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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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