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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 Clerkin Trio, On the Turning Ground

by spiral 2026. 5. 3.

나이가 들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게 된다. 불쾌와 유쾌의 구분, 그리고 가치관이 명확해진 결과다. 한 가지 결론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 수단은 위험한 공간이다. 서울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중에 서로 충돌이 일어날 확률은 대단히 높다. 길거리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스치는 것도 경계해야야할 일이다. 우발적으로 서로 얽히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걷다가 서로 부딪히는 일 뿐만 아니라 삐끼, 서비스 업종 종사자, (유사)종교인들의 접근과 같은 일도 벌어진다. 특히나 (유사)종교인들의 접근은 그 방식 자체가 기괴하고 섬찟하다. 반경 1m 이내로 사람이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같다.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알려진 곳에는 늘 사람이 많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늘 물리성이 생각을 압도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지는 진정 최악의 장소 중 하나다. 생각이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물리성이 인간성을 지배한다. 길거리에서, 대중교통 수단 속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라 화물에 불과하다. 걸어다니는 화물. 포스트휴머니즘은 다른 먼 곳에 있지 않다. 미래의 인간이 아니다. 그냥 이미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길거리에 나가면 나는 당장 포스트휴먼이 된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 없다. 밀쳐지거나 밀거나, 아니면 피하거나 부딛치거나나. 이런 공간 속에서 의식이 발현되고 현상학이 발현되면 고통과 불쾌만이 얻어진다. 사실 애당초 현상학적 경험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사이버네틱스적 작용-반작용의 지능이 발현될 뿐이다. 피지컬AI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베끼고 싶은, 기계에게 이전해주고 싶은, 탐나는, 여전히 쓸 만한 고도의 지능일 것이다. 하지만 의식은 없는 지능이다. 길거리의 인간이란 전부 그러한, 의식 없는 고도의 지능체들이다. 기계가 인간성 혹은 내면을 가질 수 있으려면 시공간의 물리적 영향력이 약화되어야한다. 대도시의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이다. 자기만의 방 없이 문화는 불가능하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이 내면과 영혼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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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urning Ground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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