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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폭력과 스포츠 사이에서

by spiral 2025. 12. 22.

넷플릭스의 <피지컬> 시리즈를 최근 시즌부터 옛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봤다. 힘센 자들이 몸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의외로 가장 최근작이자 시즌3인 <피지컬: 아시아>는 상당히 건전했다. 완성도도 높았다. 최고의 신체를 지닌 자들이 내보이는 능력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했다. 동시에 그들이 한계에 이르며 조바심내는 모습은 동정심마저 일으켰다. 보는 사람 입장에 공감이 작동했다.

반면 시즌2는 시즌3와 느낌이 다르다. 시즌3는 처음부터 팀 대결에 기초한 덕분에 팀원들 사이에 유대, 배려, 존경이 배경에 있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작동하는 곳에 상스러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시즌2는 달랐다. 시즌2는 개인의 생존을 걸고 벌이는, 2010년대 초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경연 오디션의 포맷을 따르고 있었던 이유로 1화에서 사람들이 경쟁을 시작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길거리의 거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미지의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나오는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 싸움이 유머와 조롱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군대에서 동원 훈련을 가서 서로 모르는 남성들을 한 방에 모아놓을 때 일어나는 남성 문화 특유의 상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스러움은 개인전에서 팀전으로 옮겨가면서 상당 부분 해소됐다. 상스러움을 통제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육체적 한계에 이르게 프로그램 설계에 있었다. 

시즌1은 보다 노골적으로 상스러움을 드러냈다. 시즌1 초반부에서 그 본모습이 드러난다. 데스매치라는 이름으로 수행된 첫번째 퀘스트가 문제적이다. 육체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자신의 힘을 무제한으로 자랑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있었다. 프로페셔널 격투가들이 비격투기 운동인들을 상대로 과시하듯 격투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격투 기술을 사용하도록 고안된 종목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누가 공을 끝까지 뺏기지 않고 쥐고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종목의 목적이 있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게임은 상당 부분 격투기 무대로 변질되고 있었다. 심지어 상대를 조롱하고 성에 차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모습마저 나타났다. 자신의 체력적 한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껄렁거리면서 상대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신체를 무기화하는 운동 선수들이 지닌, 경쟁에서 상대를 눌러야한다는 정신 상태가 자칫 얼마나 위험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한 예로, 한 종합격투기 선수라는 자가 상대 선수를 깔아눕힌 뒤 관중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내보인 승리의 제스처는 마치 사이코패스의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보일 정도였다. 의도적 쇼맨십으로 연출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진지했고, 처음에는 환호하던 관중들도 그 섬뜩한 모습에 침묵에 빠질 정도였다. 헤비급 국가대표 레슬러였다는 사람은 교도관이 직업인 사람을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겼다는 이유로 상대로 선정한 뒤 경기에서 수플렉스로 내다 꼽기를 반복했다. 그는 흥분 상태에 있었다. 살기가 넘치고 있었다. 승리하고서도 평상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패배자에 대한 배려는 형식적이었고, 그저 공중제비를 돌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폭력성에 있어 포르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경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피가 튀며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정서 자체는 상대를 짓밟고 죽이겠다는 살기로 가득했다. 이러한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행태에 비하면 추성훈이 또 다른 종합격투기 선수와 맞붙어 MMA 룰로 보여준 경기가 훨씬 더 신사적이고 스포츠 같이 보였다. 그러나 추성훈 경기가 보여준 스포츠맨십은 두 명이 모두 종합격투기 선수였기에 발생한 힘의 균형 때문에 가능했다. 추성훈에게 격투기 룰로 싸워보자고 상대 격투기 선수의 태도는 선배 격투가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었다. 실제로 게임 자체는 잘 진행됐다. 그러나 원래 공을 가지고 진행하는 게임의 취지에 대해 '추성훈을 상대로 공놀이나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공은 제쳐둔 채 격투기 게임을 진행한 부분은 문제적이다. 추성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서는 적절한지 모르나 제작진 및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영화인 줄 알고 봤더니 포르노인 경우 시청자가 느낄 감정을 생각해보라. 이는 선수들이 자신의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에 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출현자의 많은 수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성적 자체보다는 자기 자신을 알릴 기회로 등장한 모습이 적지 않게 있었다.

시즌1 첫번째 퀘스트에 있어 제작진은 선수들이 룰을 개인적으로 변용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장을 좀 하자면, 선수들이 경기장을 이른바 '깡패들의 뒷골목'으로 만들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 관중들은 그 모습에 그저 환호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체육 시간에 학생들이 축구를 하다 말고 깡패짓을 하는데 선생님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뒤늦게 제작진이 시즌3에서 비슷한 게임이지만 룰을 변경해서 공에 집중하도록 만든 조치는 당연한 결과다. 시즌3가 훨씬 더 볼 만했던 이유는 시즌1에 비해 훨씬 더 스포츠와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지컬> 시리즈는 폭력과 스포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함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과 같다. 시즌3가 보여준 균형감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시즌1 초반부 퀘스트의 경우 폭력이 스포츠를 압도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요소가 강화될 경우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 애초 스펙터클을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100명을 1명의 우승자로 줄이는 과정은 참가자 입장에 경쟁에 대한 극단적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생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으로 만든다. 100대 1로 싸워야한다는 생각을 하고도 평상심 속에 있을 수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게 방송이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폭력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피지컬> 시리즈에 있어 참가자들이 내보이는 폭력성에 대한 통제는 그들을 체력적으로 극한의 상태로 밀어붙이는 퀘스트 덕분에 가능했다. 고통 앞에서 무너지는 참가자들의 모습 때문에 그들이 사전에 내보인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연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그저 계속해서 기세등등했다면 <피지컬>의 참가자들이 내보이는 폭력성은 이미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제작자들이 이 문제를 인지한 결과 시즌3가 지금과 같은 정제된 모습으로 나온 것이라고 본다.** 

* 이는 실질적인 문제다. 시즌2에서 탑3에 든 한 국가대표 운동선수는 그후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는 운동으로 다져진 힘이 있는 자들이 실제로 그 힘을 일상에서 활용할 충동을 느낀다는 뜻과 같다. 

** 시즌3가 폭력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도록 만든 데는 김동현이라는 인물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그는 격투기 선수로서나 방송인으로서 모두 성공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균형잡힌 감각 및 유연한 인성으로 자칫 터져나올 수 있는 팀원의 폭력성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40대의 노련한 리더다. 시즌1에서 이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추성훈이다. 공통점은 둘 모두 사회적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서 생존형으로 경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회적 지위가 탄탄하지 않은 나머지 참가자들이 기본적으로 우승상금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은 면이 큰 것에 비해 이들은 명예를 위해 뛰었기에 과도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고 본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인정 및 상금을 위해 경쟁하게 되면 누구든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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