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1970년대 하드록의 먼 조상의 하나는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윌리 딕슨 등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일렉트릭 블루즈다. 20세기 초반 델타 블루즈는 원래 어쿠스틱 기타 기반이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일렉트릭 기타 자체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기타는 1930년대가 되어야 처음 나오게 된다. (깁슨 레스 폴 기타로 유명한 레스 폴은 1930년대 일렉 기타 기술 발전에 공헌한 사람 중 하나다.) 그것도 단순히 빅밴드 내에서 관악기나 드럼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기타의 소리를 더 키울 방 도로 고안된 것에 불과했다.
이는 델타 블루즈 시절 블루즈가 밴드 음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 연주하며 노래하는 솔로로 이루어진 게 원조 블루즈의 모습이다. 이 경우 악기의 소리를 증폭시킬 이유가 없다.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블루즈는 미시시피 지역 흑인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방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블루즈가 밴드 음악이 되는 것은 1940년대다.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과 함께 도시 지역 군수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남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북부 도시로 이동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노동자의 대이동은 크게 새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서부의 캘리포니아 지역, 동부의 뉴욕, 중부의 시카고가 그 셋이다. 이들 세개의 지역이 지금 미국의 3대 도시--뉴욕, 로스엔젤리스, 시카고--를 이루게 된다. 이들 도시는 동시에 음악과 예술의 3대 도시가 된다. 각각 동남부, 델타 지역, 텍사스 지역 흑인이 옮겨간 결과다. 거꾸로 말하면, 흑인 음악이 없었다면 미국은 동시대 팝음악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아직도 시나트라풍 노래에 머물러있었을 수도 있다.
록앤롤은 블루즈 전통 음악가들이 이 세 지역으로 이동한 후 밴드 음악을 발전시키면서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블루즈 장인들은 전부 이들 도시 노동자 출신이다. 머디 워터스는 델타 지역 플랜테이션 노동자였다가 시카고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BB 킹은 시카고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지만 델타 지역 플랜테이션 농부였다가 멤피스 지역에서 접시닦이, 세탁소 직원 등으로 일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아는 이 시절 유명한 블루즈, 록앤롤 음악가는 전부 노동자다.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트럭운전수였다.
블루즈를 밴드 형태로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한다는 생각은 시카고 지역 흑인 블루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처음 만들어진다. 일렉트릭 기타가 한번 등장하면 디스토션 걸린 기타 소리로 이행하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게 된다. 이게 1960년대 록음악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40-50년대 시카고 블루즈, 50년대 척 베리 및 보 디들리, 60년대 롤링스톤즈, 야즈버즈 등을 거쳐야 70년대 레드 제플린이 나오게 된다.
사실 머디 워터스의 1977년 녹음 "Mannish Boy"의 묵직한 사운드는 거꾸로 당대 잘 나가고 있던 하드록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50년대 녹음은 그렇게까지 묵직하지는 않다. 머디 워터스는 1960년대 잘 나가던 록음악의 영향을 거꾸로 받기도 했다. 한 예로 1968년에는 사이키델릭록의 형태로 자신의 곡을 편곡하여 <Electric Mud>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래 엘모어 제임스도 시카고 일렉트릭 블루즈 계통에 속한다. 그 자체로는 딱히 하드록적이지 않다. 그러나 잠재력은 있다. 한 예로, 부기우기식 피아노 연주를 빼고 베이스 라인에 동기화된 기타 리프를 강화한 후 "Talk to me baby"라는 후렴을 주거나 받거니 하는 앤티포니(antiphony) 기반 블루즈 사우터풍으로 부르면 머디 워터스에 훨씬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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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ky Is Crying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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