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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Haden and Kenny Barron, "For Heaven's Sake"

by spiral 2018. 7. 7.

독일어를 끝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두 개의 학기를 거치며 중단되고 재개되기를 반복한 결과 11개월 만에 끝이 난 것이다. (마지막에는 무려 2시간 짜리 독일어-영어 번역 시험을 보기도 했다. 세상에 시험이라니! 그 옛날 학부 다닐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실제로 한 학기 분량의 수업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개월이다. 그러나 마지막 두 달은 다른 것은 거의 제쳐두고 독일어에만 매달린 것이라 사실 공부를 하긴 많이 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영어 이외에 독일어 하나 정도는 더, 쓰고 말하는 것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자의식이 있어서 깨나 욕심을 가지고 덤벼들기도 했다. 

지금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영어를 구사하는 입장에서 다른 서구의 언어를 더 배우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예컨대, 한국인이 영어와 같은 서구의 언어를 최초로 배울 때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쉽다. 물론, 영어 사용자 입장에 독일어가 결코 쉬운 언어는 아니다. 영어와의 차이가 있는 만큼 이것 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으며 그에 따라 독일어 정보를 정확히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효과적으로 잘 써야한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비슷한 어원에서 비롯되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독일어 전치사가 그와 대응하는 영어 전치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겉모습이 영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거꾸로 속게 되는 요소가 있다는 뜻과 같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의 'become'에 해당하는 'werden'이 독일어에서 사용되는 폭넓은 방식이다. 해당 동사는, 영어의 'become'과는 달리, 일반 동사일 뿐 아니라 조동사이도 하며, 조동사로서도 미래의 시제를 나타내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또 수동태 문장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영어와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요소가 학습자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잡은 영어 지식과의 관계에서 여러 혼란을 초래한다. 그뿐인가? 의외로 영어와 어순이 많이 다르다. 조동사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조동사와 본동사 사이에 길게 목적어 및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 등이 위치하게 되는 식이라서 영어적 사고를 가지고 독일어를 대하다 보면 문장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머리가 꼬이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달리 말하면, 독일어를 제대로 하려면 독일어를 위한 문장 처리 과정을 머릿속에 하나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영어와는 다른 독일어 고유의 어원을 지닌 단어와 친숙해지는 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내 생각에는 독일어 어원이 영어로 치자면 고대 영어 어원과 관련이 있지 싶다. 물론, 오늘날 고대 영어는 영어 모국어 사용자에게도 완전히 새로 배워야하는 외래어와 같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영어에 비해 외래어에서 비롯된 어원이 그리 많지 않아 한번 독일어 자체 어원과 충분히 친숙해지면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어휘를 이해하고 확장하는 데 큰 이점이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은 관용적 표현 및 어휘를 계속해서 충분히 익힌다면 멀지 않아 내가 지금 영어를 하는 만큼은 독일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더 일찍 배웠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는 애당초 이런 식이라면 프랑스어도 못배울 것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서구의 언어를 3-4개 구사하는 영어 모국어 사용자를 주변에서 본다고 한들 전혀 놀랍게 보지 마시라. 그들은 그저 거저 주워먹고 있는 셈이다. 불공평하게도 그들은 너무 많은 이점을 누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독일어를 사용할 기회가 크게 없을 예정이라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놓은 어휘나 기타 지식이 점차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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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and the Cit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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