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살쯤에 죽고 싶은지를 물어보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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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루는 법을 안다는 것은 의외로, 규율을 부과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호르몬의 작용에 대한 보다 철저한 과학적 이해를 하나 마련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이 순간 우리는 결코 행복했던 계몽주의적 과학의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오늘날 과학은 그저 우리 신념의 바탕이다. 즉 희망은 과학으로부터 태동한다. 따라서 죽고 싶은 마음에 빠질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신경 전달 물질의 사실주의적 바람을 거스르며, 이 물질주의적 환영 혹은 자연주의라 불리는 사실들의 숙취 또한 지나갈 것이란 신념과 함께, 그렇게 '몸의 시대'를 비웃으며, 거꾸로 사실 내부의 균열이라 불리는 전망을 최악의 물질적 교착상태 내부로부터 싹틔워내는 일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는 결코 어떤 완성된 정신 혹은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신에 직접 이르는 일일 수 없다. 그보다 차라리 우리는 계속해서 괴로울 것이고 계속해서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몸을 내던져 사랑해야 하는 정신 내부의 교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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