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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nn_(쿠인), "난빤스만입고도멋진생각을해"

spiral 2020. 9. 18. 11:43

이 증오스러운 뮤직비디오의 압권은 저 섬세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떨리는 허벅지의 살을 확인하는 순간 찾아온다. 보컬의 지위를 흉내내고 있는 자--사실 실제 보컬은 녹색티를 입은 자다--가 '빤스만 입고' 의자에 앉아서 기계적이고 단조로운 리듬에 맞추어 다리를 쿵짝거릴 때마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흔들거리는 저 속살, 저 허벅지의 살을 보라. '빤스만 입는다'는 의미의 핵심은 바로 저 통제 불가능한 신체의 흔들림을 드러내는 데 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신체를 완벽히 통제하고자 하는 '아이돌 군무'의 주술을 푸는 특효약이 있다면 아래의 곡과 같지 않겠는가? 이제 신체는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덜렁거리고, 기타등등을 한다. 이런 것을 '의식'에 대비하여 '무의식'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무의식은 신체다. 저 반쪽짜리 정장 차람을 보라. 무의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상체는 직장에 가 있지만 하체는 여전히 방구석에 있다. 여기서 직장과 집의 구분은 사라진다. 재택근무 혹은 원격근무의 원형이 바로 이런 것이지 않은가? 예컨대, 코로나 시대에 집에 앉아 화상으로 바이어와 이야기할 때 구태여 하의까지 차려 입을 이유는 없다. 이것이 21세기 인어공주의 모습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장 상의에 덧붙여진 빤스 하의란 인간의 상체에 덧붙여진 물고기 하체와 같지 않은가? 반쪽짜리 인간, 인간이 되지 못한 것, 완결되지 않은 인간, 이것이 바로 오늘날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인간성의 요점이다. 인간성은 열린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 관건은 나머지 반쪽을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에 있다. 아래 곡의 기계적으로 단조로운 리듬을 보라. 곡조나 멜로디라 할 만한 것의 전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더불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영상을 보라. 흔들리는 허벅지의 기계성이 내면 혹은 의식에 의해 인간화되지 않은 결과다. 영혼이 결여된 기계에 앞으로 무엇이 연결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를 떠올려보라. 어떤 면에서 우린 이미 모두 우리의 신체가 어딘가에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음악의 미래' 또한 저 빈 자리에 무엇이 연결되느냐에 달렸다.